Ditte Gantriis, Circle of Life (2018), installation view, Kunsthal Aarhus. Photo: Mikkel Kaldal
여성 장인들로부터
"일상의 삶에서는 길쭉한 것보다 오목한 것들이 더 쓸모가 있었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다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영웅도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담겨 있는 가방을 둘러매지 않고서는 길을 나설 수 없다. 물론 영웅이 가장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그런 사실일 테지만 말이다. 가방 속에 담긴 씨앗 한 줌, 물 한 모금이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별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 세계를 만든다."
디테 간트리스(Ditte Gantriis)가 《Body & Soul》(Frutta, 2014)에서 처음 선보인 후, 2년 뒤 《Love is Eternal》(Jupiter Artland, 2016)에서 보다 전면에 배치한 고리버들로 만든 대형 바구니 작업 <Body & Soul>은 우리가 아는 보통의 바구니들과 동일한 모양새와 제작방식을 지녔으나 압도적으로 큰 크기로 인해 구분된다. 그중 몇몇 바구니 작업은 사람의 키를 맞먹기에 누구든 그 속에 충분히 몸을 숨길 수 있을 법도 하다. 이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나뭇가지를 엮어냈을 손을 상상하다 보면, 어쩐지 아주 먼 옛날부터 바구니와 함께해 온 이들의 손까지 떠오른다. 일터에서 가정으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나르다 그을린 손, 바구니의 둥글고 넉넉한 품 안으로 식구들과 함께 먹을 곡식과 과일을 풍성히 담아내는 온화하고도 다부진 손, 그리고 이 모든 생활의 운반을 지탱시키는 바구니를 만드는 리드미컬한 손이 머릿속에 스친다. 그러나 디테 간트리스의 바구니 작업이 놓인 전시장에서 바구니와 늘 함께하던 손들은 관찰되지 않는다. 디테는 무엇을 넣어도 남을 만큼 넉넉한 크기의 바구니들을 만든 다음 그 안에 아무 것도 채워 넣지 않았다. 빈 바구니 채로, 그들은 휴식이라도 취하듯 바닥과 몸을 맞대고 툭 놓여 있다. 누구도 이 바구니를 손에 들지 않고, 또 (신체와 맞먹는 크기로 인해) 쉽게 들 수조차 없다.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바구니들은 온전한 바구니의 모습 그 자체로 존재하고 또 보여진다. 사람들은 바구니를 오래도록 관찰한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대형 바구니들이 가진 결과 모양, 질감과 색은 아름답다. 이전까지 우리의 삶 너무 가까이에 붙어 존재해 온 바구니의 조형성을 이제서야 곱씹어 음미해 보게 된다.
일상의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 곁에 자리한 바구니, 이 바구니를 운반하고 또 제작해 온 사람들, 하나같이 간과된 존재라는 점을 공유한다. 디테는 <Body & Soul> 연작을 통해 바구니를 둘러싼 느슨한 계보를 기억하도록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끈다. 이 계보 속에는 이름 모를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바구니를 엮던 익명의 여성 장인들(craftswoman), 그들이 공들여 만든 바구니에 깃든 장인정신(craftswomanship). 혹시 이 부름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왜? 바구니는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구니 제작은 고도의 집중력, 섬세한 작업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요한다. 하나의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필요하고, 그 결을 하나씩 정돈해 가며 폭과 길이를 깎아 맞춰야 한다. 정제된 나뭇가지들로 높이를 결정짓는 세로 줄을 만들고 그 사이 가로 줄을 번걸아가며 겹겹이 끼워 넣는다. 이처럼 정교하고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바구니 제작 기술은 어째서 쇠나 철을 연마하는 (주로 남성에 의해 행해지던) 기술에 비해 충분히 인정받지 못 했을까? 바구니 제작자들은 쇠와 철로 사물을 만들어내던 이들에게 부른 '장인(craftsman)'이라는 명칭으로 왜 함께 불리지 않았을까? 바구니는 기껏해야 채소나 과일, 곡식을 나르는 도구일 뿐이라서? 아니면 바구니를 만들고 또 나르던 사람들이 가진 성별의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사실 '장인'과 '장인정신(craftsmanship)'은 남녀 모두를 가리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지만, 실제로 이 단어는 특정 성별에게 강하게 달라붙어 사용된다. 이 단어를 받아드는 즉시 머릿속에서 나이 든 남성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이미지가 등장하는 동시에 단어는 어떤 냄새를 동반한다. 쇳가루 냄새, 소금에 절인 짠 향,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쿰쿰한 내음이 풍겨 온다. 장인, 그리고 장인정신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품어 온 이미지와 향은 아무리 탈탈 털어내도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앞서 바구니를 엮던 익명의 여성들을 '여성 장인(craftswoman)'으로 따로 불러낸 것이다. 이 단어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내음이, 또 은은하게 신 향이 코끝에 번진다. 눈앞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제각각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여성들의 움직이는 손과 팔이 이미지로 떠오른다. 우리는 이 여성 장인들로부터 무엇을 얻었나? 미처 인지하지 못 한 사이 우리의 몸(body)과 마음(soul)을 키운 바구니로부터 얻은 일용할 양식들, 디테의 <Body & Soul> 연작을 경유하여.
러브레터
바구니를 엮던 여성 장인들의 느슨한 계보 끝자락에 선 디테 간트리스는 바구니를 엮는 손 외에도 다채롭게 움직이는 손을 지녔다. 그녀는 땋는 손, 꼬는 손, 그리는 손, 깎는 손, 주무르는 손, 바르는 손, 다는 손을 움직여 작업한다. 그로부터 디테가 구현한 것들: 샹들리에, 촛대, 의자, 테이블, 모형 음식, 와인 잔, 블라인드, 무늬 벽지 등. 앞서 나열한 것들은 모두 일상 공간을 구성하는 뻔하고 흔한 사물들이다. 스스로도 고백한 바, 디테는 이러한 '보편적이고 진부한 것'에 기반해 작업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과 조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관습,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사물과 환경 등이 그녀의 작업에서 드러난다. 《COMPANY》(Green is Gold Studio, 2012), 《SERVICE》(Toves Galleri, 2012), 《CASUAL FRIDAY》(Peter Amby Gallery, 2013)와 같이 작업 초기에는 공적 영역에 가까운 일상을 다루었다면, 2014년 이후 전시 《A Rose》(Picnic Picnic, 2015), 《Peace, Love and Harmony》(SALTS, 2016), 《Love is Eternal》(Tin Roof Gallery, 2016), 《Sexual Feeling》(Frutta, 2016), 《Open Mic Love Poems》(Tranen Contemporary Art Center, 2018)에서는 보다 사적 영역에 가까운 일상을 토대로 작업을 선보였다.
특히 디테의 중후반 작업에서 중심이 된 주제는 일련의 전시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는 것처럼 '사랑'과 '로맨스'에 관한 것이다. 전시는 사랑의 뉘앙스와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 둘러싸여 있다. 검붉은 와인이 찰랑이는 유리잔, 흩날리는 장미 잎사귀, 몸을 맞댄 남녀의 형상을 새긴 촛대, 하트 모양을 그려 넣은 그림들, 모두 사랑을 가리키는 너무 쉬운 단서와 연결들이다. 그래서 동시대 미술은 어느 예술 장르보다 이 주제에 무관심하다. 뻔하고 쉬운, 흔해 빠진, 진부하고 통속적이라 여겨지는 '사랑'은 동시대 미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멋지거나 쿨하지 않을 뿐더러, 딱히 문제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디테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사랑의 작업들'은 다시금 의문을 자아낸다. 이 흔하고 재미없는 걸 왜 계속해서? 사랑을 대신한 기호로 남발하는 하트 이모티콘은 더 이상 진짜 사랑을 표현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해서 그 단어를 입밖으로 내뱉는 순간 금세 달아나 버린다. 디테의 전략은 저 멀리 떠나버리고 희미해진, 우리 앞에 겨우 껍질만 남은 사랑을 가지고 진짜 사랑에게 회유하는 듯 보인다. 나는 끈질기게 이걸 사랑이라 부르려 하고, 사람들에게도 이 껍데기 사랑을 사랑의 실체인 양 계속 보여주려 한다고, 그런데도 넌 돌아오지 않을 거냐고, 이대로도 정말 괜찮으냐고. 집요하게 대답을 요구하던 디테는 사랑으로부터 뜻밖의 편지 한 통을 전달받는다.
잉태 가능성을 지닌 조각
"사실 '무상의' 내어줌은 없다. 우리는 결코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차이는 왜 주는가, 어떻게 주는가에 있다. 내어주는 몸짓이 주장하는 가치, 그것이 순환하게 하는 가치들 속에 있다. 내어주는 자가 얻는 이득의 유형, 그가 그것을 쓰는 용도에 있다."
디테가 사랑으로부터 받은 답은 어떤 글이나 이미지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였다. 그녀는 이 생명을 자신의 몸 안에 잉태하게 된다. 사랑은 미지의 영역으로, 또 다른 세계와 관계 속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이로써 디테의 작업에도 새로운 갈래길이 트인다. <Circle of Life>(2018)는 바로 그 새 길에 자리잡은 첫 작업이다. <Circle of Life>는 품고 있다. 작품 속 형상으로 새겨진 한 여성은 자신의 뱃속에 태아를 품고, 또 이 형상을 품에 안은 한 그루의 물푸레나무가 있다. 한 작품 안에서 세 존재, '엄마'와 '태아' 그리고 '나무'가 공존한다. 엄마가 태아에게 자신의 몸 일부를 내어 준 것처럼, 나무 또한 인간 타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고 있다. 한편 이 내어 줌은 동시에 자신의 일부를 잃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타자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내어 줄 수는 없다. <Circle of Life>는 다음의 과정을 내포한다. 안다, 품다, 담다, 만들다, 함께 하다, 내어 주다, 깎이다, 잃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경이롭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내어 주는 고통스러움 가운데 형언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이 동반한다. 그 순간은 생명으로부터 또 다른 생명이 움트는 자리에서 벌어진다. 작품은 그에 붙은 제목처럼 '생명의 순환'을 담지한다. 엄마를 통하지 않고 홀로 자라는 아기는 없는 것처럼, 또 엄마를 자라게 한 엄마의 엄마가 있었던 것처럼, 아기를 품은 엄마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물푸레나무가 온 몸을 내어준 일을 기억해야 하듯,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이토록 단단하게 자라도록 도운 손길이 하늘과 땅에서부터 있었다는 것. 누구도 혼자 만들지 않고, 어떤 것도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Circle of Life>는 단순히 작가(주체)에 의해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작품(대상)이 아니다. 기이하게 들릴지 몰라도, 작가가 작업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재료가 자신을 내어 주지 않는다면 작품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비단 <Circle of Life>의 표면에 보이는 잉태의 장면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작품이 거할 수 있도록 허락한 이 조각은 그 자체로 잉태 가능성을 지닌, 잉태 가능한 조각이다.
각주
[1] 최유미,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도서출판 b, 2020, p. 298.
[2] 주로 기업에서 흔히 사용되거나 기업을 나타내는 상업 이미지, 기업 내부에 자리잡은 문화와 관습 등을 은유하거나 시각화한 작업을 선보였다.
[3] 엘렌 식수, 박혜영(역), 『메두사의 웃음/출구』, 동문선, 2004, p.101.
[4] 최유미, 앞의 책, p.68.
To Ditte Gantriis, with Love
From Craftswomen
“In our day-to-day lives, things that are concave are more useful than those that are elongated. That’s because they can hold all of the tiny things. [. . .] No hero can venture out on their path without a bag on their back containing those small times – even if that fact is what a hero least wishes to understand. A handful of seeds in a bag, or a sip of water, creates new connections. Such seemingly unimportant things are what makes the world.”
The works in the large wicker basket series Body & Soul were first presented by artist Ditte Gantriis at Body & Soul (Frutta, 2014) and assigned a more central role two years later at Love Is Eternal (Tin Roof Gallery, 2016). They look much the same as the other baskets we know, and the method of production is the same as well; what sets the baskets apart is their overwhelming scale. One deeply hollowed out basket is broad enough that two or three adults could fit inside with room to spare. Imagining how the artist must have had to move her body around a lot as she wove the branches to produce a basket far taller than herself, I find myself thinking of all the different hands of people who have worked with baskets since time immemorial. In my mind, I see the hands stained from constantly carrying items from the workplace to the home in order to feed and clothes others; the gentle yet sturdy hands filling round and spacious baskets with fruits and grains to eat with their family; and the rhythmic movements of hands making baskets to support all of these movements in life. Yet in the exhibition space where Gantriis’s baskets are placed, we see no sign of the hands that worked with them. After making baskets big enough to hold more or less anything, the artist has placed nothing inside. The baskets are placed against the ground, empty, as though taking a rest. No one is holding them in their hand – nor even could they (given the size of the baskets, which dwarf the human body). At the center of the exhibition space, the baskets exist and are seen simply as they are: as baskets. People spend time observing the baskets. Large enough to fill our field of vision, the baskets boast beautiful grains, shapes, textures, and colors. It is as though for the first time ever, the viewer is savoring the artistry of the baskets that have been with us throughout our lives, perhaps too closely for us to appreciate them.
Occupying a place beside the other small and trivial things in life, the baskets share a common trait with the people who have carried and made them: they are all overlooked. With her Body & Soul series, Ditte Gantriis takes our hand and guides us to remember the loose lineage that exists around baskets. It is a lineage that includes no small number of unremembered women: the anonymous craftswomen who wove the baskets, and the craftswomanship indwelling within those painstakingly crafted items. Does this word “craftswomanship“ feel strange to us? And if so, why should it? Baskets are not simply made. Creating a basket is a meticulous process that requires deep concentration and ample time. Dozens of branches are needed to make a single basket; the maker must adjust the grain individually and pare down to the right length and width. The vertical lines that determine the height are made with polished branches, as the horizontal lines in between are placed in alternating layers. Given how delicate and elaborate a touch basket making requires, why has it failed to win the same recognition as skills such as polishing iron and other metals (skills largely performed by males)? Why have basket makers not been referred to as “craftsmen,” the name given to those who made things out of iron and other metals? Is it because baskets are simply used to carry things like fruit, vegetables, and grains? Or is it because many of those who make the baskets and carry items in them have been women?
The terms “craftsman” and “craftsmanship” can be used to refer to females and males alike. In practice, however, they are strongly gendered. Whenever we hear them, the image that immediately comes to mind is of an older male. As the image appears, the words become associated with certain smells: the scent of iron powder, a briny salt pickling odor, the must of old wood. The images and scents so long associated with words like “craftsman” and “craftsmanship” are not easily shaken. That is why I made a point earlier of referring to the anonymous weavers of baskets as “craftswomen.” It’s a word that evokes a sweet and gentle aroma, a subtly pungent scent that spreads through the nose. The image that comes to mind is of women of different ages and skin colors, their hands and arms in motion. What have we gained from these craftswomen? The daily provisions that came from these baskets and nurtured our bodies and souls without our realizing it – appearing now to us through Ditte Gantriis’s Body & Soul series.
“Love” Letter
Standing at the end of a loose lineage of basket-weaving craftswomen, Gantriis possesses hands that move in various ways beyond the weaving of baskets. As she weaves, her hands braid, twist, draw, pare, knead, smear, and dangle. Through these actions, she produces chandeliers, candlesticks, chairs, tables, models of food items, wine glasses, blinds, and patterned wallpaper. All of those things are commonplace, obvious parts of our everyday spaces. Gantriis herself admits that her work is based in these kinds of “universal, cliché things.” More specifically, her work reveals the basic gifts and conditions of human beings, the traditions that have been carried on from past to present, and the objects and environments that exist around us today. In her earlier work such as COMPANY (Green is Gold Studio, 2012), SERVICE (Toves Galleri, 2012), and CASUAL FRIDAY (Peter Amby Gallery, 2013), she focused on daily life in a sense that bordered on the public realm. Since 2014, however, her work has been rooted in a daily experience that is more personal, as in her exhibitions A Rose (Picnic Picnic, 2015), Peace, Love and Harmony (SALTS, 2016), Love is Eternal (Tin Roof Gallery, 2016), Sexual Feeling (Frutta, 2016), and Open Mic Love Poems (Tranen Contemporary Art Center, 2018).
As the exhibition titles indicate, “love” and “romance” have been central themes in Gantriis’s work from this middle to later period. The exhibitions are cloaked in the nuances of love and romantic atmosphere. The glasses brimming with deep red wine, the fluttering rose petals, the candlesticks showing a man and woman pressed against each other, the paintings with heart images – all of these things hint at or connect with love in very basic ways. It is for this reason that contemporary art, more than any other artistic genre, seems uninterested in those themes. Love is seen as obvious, easy, trite, boring, and conventional. It is not cool or edgy enough to captivate contemporary art, nor does it come across as “problematic.” Because of this, the “love artworks” that Gantriis continues to present raise new questions. Why carry on with something so common and boring? “Heart” emoticons have been used so often as symbols of love that they don’t seem to represent true love anymore. Beautiful, valuable emotions are delicate, sensitive; the words seem to flee the instant they leave our mouths. Gantriis seems to be using the shells of love that remain before us in an attempt to coax back the true love that has receded off in the distance. “I will insist on calling this ‘love,’” she says. “I will continue to show this shell of love to people as if it were the real thing. Will you still not come back? Is it OK to continue on this way?” As she insistently demands an answer, the artist receive an unexpected letter from “love.”
Sculptures with Conception Potential
“Really, there is no “free” gift. You never give something for nothing. But all the difference lies in the why and how of the gift, in the values that the gesture of giving affirms, causes to circulate; in the type of profit the giver draws from the gift and the use to which he or she puts it.”
The answer that Gantriis received from love was not a text or an image, but a creature. The artist came to conceive that lifeform within her own body. Love leads her into an unknown realm, into a different world and relationship. This has opened up a new crossroads in her work. Circle of Life (2018) is the first of her pieces to be situated along that new path. Circle is embracing: engraved as a form within the work, a woman carries a baby within her womb, and we also see an ash tree that embraces this form. Three beings coexist in a single work – the mother, her child, and the tree. Just as the mother has given her baby part of her body, the tree has given its body to a human “other.” With this giving, there is also the loss of part of oneself. We cannot give something of ours to others while remaining completely whole. Circle of Life encompasses a process of embracing, holding, containing, making, joining, giving, being pared away, losing, suffering . . . and experiencing wonderment. Ironically, there is an indescribable feeling of wonder that comes amid the pain of giving oneself away. It is a moment that transpires in the place where a new life sprouts from another; as the title indicates, the work expresses the “circle of life.” Just as there is no baby that can grow without a mother, and just as that mother had her own mother who allowed her to grow, we must recall that the ash tree gave its body to create the form of the mother holding her child – and within heaven and earth, there was a helping hand that allowed that ash to grow big and strong. No one creates anything all alone, and nothing is created all on its own.Circle of Life is not just an artwork (object) created passively by an artist (subject). Strange as it may sound, this work would never have been created had the material not given itself up so that the artist could produce it. This is not simply because of the scene of conception that is visible on the surface in Circle of Life – this sculpture that permitted the artwork to dwell in its body possessed that potential for conception in its ow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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