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샹탈 조페(Chantal Joffe, b.1969)는 인물화 중심의 구상 회화를 다룬다. 작가는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여성의 형상을 캔버스 화면에 옮겨 그려 왔다. 가족과 친구들에서부터 잡지나 사진에서 마주한 배우와 모델, 작업 활동에 영향을 미친 앞선 세대의 여성 작가 다수가 샹탈 조페의 그림에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본 전시 ≪Family Lexicon≫은 작가 자신과 그녀의 가족, 가족만큼이나 친밀한 관계의 친구와 친구의 딸을 담은 초상화를 선보인다. 전시에 포함된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작가와 일상의 시간을 공유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 온 여성들로 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각 작품에 그려 넣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정하게 부르듯이 그들의 이름을 작품 제목에 새겨 넣는다. 에스메(Asme), 냇(Nat), 몰(Moll), 나타샤(Natasha), 비타(Vita), 이자벨(Isahbel), 벨라(Bella)…. 앞서 나열한 이름은 작가의 딸, 언니, 조카, 친구, 친구의 딸 이름으로 모두 샹탈 조페에게 의미 깊고 소중한 존재들을 가리킨다.
한편 이 친밀한 이름들 사이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면 바로 ‘에스메’일 것이다. 샹탈 조페는 딸 에스메가 태어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딸의 성장을 기록하듯 에스메가 자라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본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샹탈 조페가 2010년대 중후반에 그린 그림들로, 에스메의 비교적 최근 모습을 담고 있다. 어느새 십대 후반의 소녀가 된 에스메는 실제로도, 그림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있다. 또한 작가는 딸의 성장을 기록할 뿐 아니라, 그와 더불어 성장하고 또 노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함께 그리기도 했다. 그 예로, 발가벗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샹탈 조페와 그 뒤로 얼굴을 빼꼼 비추는 딸 에스메를 그린 <오징어와 고래> 연작은 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은유한 작품으로, 본 전시에서 유일하게 제목에 인물명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제목은 동명의 영화 <오징어와 고래>(2005)에서 착안한 것으로, 영화는 부모의 이혼 후 변화한 가정과 아이들의 생활, 가족 간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선을 그린다. 샹탈 조페의 <오징어와 고래> 또한, 모녀가 몸을 맞댄 채 가까이 붙어 있지만 서로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친밀하고도 먼 엄마와 딸 사이를 넌지시 그려낸다. 실제로 작품은 샹탈과 에스메를 그리지만, 작가가 비유적인 제목을 택한 데는 부모와 자식 간의 보편적 관계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Family Lexicon≫은 샹탈 조페라는 한 개인과 그녀의 삶을 이루는 친밀한 여성 존재들을 보여 준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녀를 알지 못 하고, 그녀가 그린 존재들이 누구인지 모르며, 그들과 친밀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눈앞에 놓인 일련의 여성 초상화를 바라보며 친밀함을 느낀다면 그건 왜일까? 어떻게 모르는 존재 앞에서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그 대답으로 작가 개인의 경험을 다시 한 번 경유해 본다. 샹탈 조페 또한 앞선 경험을 한 바 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odersohn Becker, 1876-1907), 20세기 초 독일에서 작가로 활동한 이 여성은 샹탈 조페와 다른 시공간에 살았다. 파울라는 임신한 자신의 나체를, 엄마와 아이를, 많은 여성들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샹탈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파울라가 그린 그림에 단번에 매료된다.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을 느낀다. 한 세기를 건너,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그림은 샹탈 조페의 작업 깊숙이 개입한다. 거창하고 뻔한 말로 여길 수 있지만, 좋은 그림이 가진 힘은 그렇게 작동한다. 우리가 만난 적 없는 샹탈 조페와 그녀의 친밀한 존재들의 초상을 마주하며 마음이 동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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