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단어로 통용되는 ‘장식’은 서구권에서 ’오너먼트(ornament)'와 ‘데코레이션(decoration)’의 두 단어로 구분해 사용한다. 단어로는 명확히 분리 가능하나, 실상 서구권에서도 오너먼트와 데코레이션의 의미 사이에 큰 구별을 두지 않고, ‘특정 물체나 공간,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나 특별함을 더하고 꾸미는 용도’ 쯤의 유사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오너먼트와 데코레이션 각각이 지닌 단어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두 단어 사이 구분이 보다 명확해진다. 이 글은 장식에서도 보다 세부적으로 오너먼트와 데코레이션으로 분리한 개념과 그 활용을 소민경 개인전 ≪포.도.주.≫에 적용하여 개별 작품을 장식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오너먼트로 보는 ‘lol’ 연작
본 전시의 중심이 되는 ‘lol’ 연작에서는 장식에서도 오너먼트의 요소가 다수 발견되는데 ‘lol’ 연작을 오너먼트로 바라보기에 앞서, 단어 ‘오너먼트(ornament)’가 지닌 어원과 그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오너먼트는 옛 프랑스어 ‘ornement’에서 시작해, 이는 장비(equipment)와 장식(ornament)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 ‘ornamentum’과, 꾸미다(adorn)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ornare’가 그 기원이 된다. 앞의 라틴어 ‘ornamentum’은 그리스어 ‘kosmos’를 옮긴 단어로 그 의미는 ‘질서’, ‘우주’, ‘장식’을 뜻하며, 종합적으로 질서(order)와 질서가 없는 혼돈의 상태에서 벗어나 질서가 구현된 세계로의 우주(universe), 그리고 좋은 질서를 부여하거나 각각의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걸맞게 꾸미는 장식(ornament)을 통해 얻어진 조화로운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또한 동사로 ‘장식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ornare’는 그리스어 ‘kosmeo'의 번역어로, ‘kosmeo’는 ‘kosmos’처럼 ‘정돈하다(arrange)’, ‘명령하다(order)’, ‘장식하다(adorn)’ 등을 뜻한다. 오너먼트로 ‘장식하기’는 곧 질서의 체계 안에서 가치론적으로 하위의 것을 상위의 자리로 옮기거나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걸맞게 꾸미는 것, 즉 그것을 질서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1] 한편 장식은 존재 양태에 있어서도 오너먼트와 데코레이션으로 분리되는데, 그 핵심적 차이는 구조체와 갖는 관계에 따른다. 보통 오너먼트는 구조체와 합일되어 있으며, 구조체 위에 형상이나 문양으로 나타난다. 제작 과정에서도 오너먼트는 구조체와 동일하거나 연속된 과정으로 나타나며 재질 또한 구조체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이에 따라 오너먼트는 ‘구조체와 합일된 장식’을 의미해 왔다. [2]
질서와 균형을 바탕으로 구조체와 합일되어 표면을 꾸미는 측면에서의 오너먼트는 ‘lol’ 연작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된다. 먼저 전시장의 가장 넓은 벽면을 차지하는 <Valley>(2020)는 같은 크기의 캔버스 세 점이 일렬로 정렬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데, 세 캔버스는 모두 동일한 재질과 색을 지닌 종이에 감싸여 있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다시 인쇄하는 기법을 통해 제작된 종이 표면의 상단과 하단에는 길이와 높이를 맞춘 동일한 무늬(투명한 유리 재질로 공통분모를 지닌 세 가지 물체로, ‘고글’과 ‘안경’, 인물의 이마 너머 놓인 ‘유리창’ 이미지)가 패턴으로 반복 등장한다. <Valley>의 상·하단을 구성하는 패턴들은 중앙부에 강조점을 두고 좌우로는 동일한 무늬로 반복 배치되며 전체 그림에 균형을 더한다. 나아가 <Vallery>와 동일한 벽면을 공유하며 벽의 가장자리 윗면에 좌우로 배치된 <Knit cap>(2020)과 <Glasses>(2020) 또한 배치의 균형을 위한 구도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또한 <Knit cap>과 <Glasses> 작품 속에 묘사된 이미지인 ‘모자'와 ‘안경’과 더불어, 신체의 일부를 덮거나 꾸미는 장신구의 일종으로 사용되는 ‘스카프’, ‘마스크’ 또한 앞의 두 작품과 더불어 전시장에서 동일한 높이의 벽 상단에 <Scarf>(2020)와 <Mask>(2020)로 걸리며 내용과 배치 두 측면 모두에서 통일성을 이룬다. ‘lol’ 연작에서의 동일한 형상과 구성의 반복은 이어지는 세 작품 <†>(2020), <x>(2020), <#>(2020)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미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는 것처럼 앞의 세 작품은 각각 †(십자), x(엑스), #(샵) 기호를 모티프 삼아 작품 속에 해당 기호를 확대하고 보충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공통적으로 세 작품은 캔버스 50호 크기의 표면 중앙으로 각 기호(†, x, #)를 크게 그려 붙인 다음 좌우 균형을 맞춘 뒤 그 안에서 부분 반복과 변주를 더한다. 여기에서 반복과 변주를 더하는 용도로 활용된 이미지들 또한 ≪포.도.주.≫에 포함된 다른 작품들을 부분 암시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한편 ‘lol’ 연작이 지닌 오너먼트적 요소의 정점은 본 전시의 포스터 디자인과 설치의 영역까지 확장, 반복된다는 데 있다. ≪포.도.주.≫ 전시 포스터의 가장자리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lol’ 연작 중 <†> 와 <Mask>가 연속되어 새겨진 모습이 확인된다. 이 포스터 틀은 전시 설치를 위한 디자인으로도 활용되며, 보다 작은 단위로 크기를 줄이고 수를 늘려 만든 바둑판 배열의 패턴들이 전시장 입구 유리문을 얇게 덮어낸다.
데코레이션: 잼 통, 머그컵, 실 가닥 외
한편 ≪포.도.주.≫에서 장식은 오너먼트뿐 아니라 데코레이션으로도 등장한다. 앞서 오너먼트의 어원을 살펴본 바와 같이 데코레이션의 어원도 살펴보자면, ‘데코레이션(decoration)’은 프랑스어 ‘décoration’과 ‘décor’에서 비롯한 각각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등장한 장식 개념이다. ‘데코레이션’의 어원으로 프랑스어 ‘décoration’과 영어 ‘decoration’은 모두 라틴어 ‘decoratio’에서 온 단어이다. 이 라틴어 단어의 동사형인 ‘decorare’는 ‘꾸미다’, ‘드높이다’, ‘돋보이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며, ‘아름다움’, ‘명예’, ‘장식’ 등을 뜻하는 ‘decus’와 ‘decor’에서 파생되었다.[3] 앞선 두 단어는 ‘어울리다’, ‘걸맞다’를 의미하는 ‘decet’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에, ‘decorare’는 고귀한 신분에 어울리는 어떤 외적인 것을 덧붙임으로 고귀함과 명예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이에 따라 ‘decoratio’는 앞선 행위나 그 행위로부터 초래된 상태를 뜻하게 된다. 따라서 앞서 오너먼트가 질서와 배열, 균형의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면, 데코레이션은 아름다움과 꾸밈, 명예의 측면이 보다 강조됨을 알 수 있다. 한편 존재 양태에서 오너먼트와 구별된 데코레이션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구조체와의 분리에 있다. 데코레이션은 구조체와의 관계에서 덧붙여지거나 부수됨에 의해 생겨나고, 제작 과정에 있어서도 구조체와 별개의 과정을 거치며 재질 또한 구조체와 이질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데코레이션은 ‘구조체와 분리 가능한 장식’을 의미해 왔다. [4 ]
앞서 살펴본 일련의 ‘lol’ 연작이 갖는 특성이 오너먼트에 가까운 장식이었다면, 전시장 중앙부의 두 기둥 선반에 놓인 <Jam>(2020)과 <Tea>(2020)는 보다 데코레이션에 근접한 장식으로 읽힌다. <Jam>과 <Tea>는 ‘전체 공간과 작품’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작품 내부의 ‘용기와 내용물’ 간의 관계에서 모두 구조체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장식을 의미하는 데코레이션으로 보인다. 공통적으로 앞의 두 작품은 공간과 갖는 관계에서 전시장 벽에 부착되지 않은 채 분리되어 존재하는 ‘유리병’과 ‘머그컵’으로, 작품 내부에서 ‘잼 통과 종이’, ‘머그컵과 둘둘 말린 종이’로 용기와 내용물 간의 제작 과정과 재질이 상이하고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데코레이션으로서 장식으로 해석된다. 한편 앞서 오너먼트로 해석한 바 있는 일련의 ‘lol’ 연작 또한 소민경이 2016년부터 진행해 온 작업으로, 본 전시 이전인 2017년 진행한 ‘lol’ 연작 중 <TV최초>, <Cut>, <Face with tears of joy>에서는 데코레이션의 요소가 함께 등장한다. 앞의 세 작품은 회화 이미지를 복제한 종이로 캔버스 표면을 감싸고, 그 위로 또 한 번 재질이 다른 재료인 실 가닥을 감싸면서 추가 포장을 더한다. 또한 소민경은 2017년 ‘lol’ 연작에 앞서 2014년부터 ‘리플릿드로잉’ 연작을 진행한 바 있다. ‘리플릿드로잉'은 기존의 전시 리플릿 표면 위에 티슈페이퍼와 비닐, 스티커 등 재질이 다른 재료들을 추가로 덧붙이거나 그 사이 겹을 만들고 꾸미는 방식을 취한 데코레이션의 일종으로, 변형된 리플릿들이 거친 제작 과정과 그 외형은 ‘평평한 포장’ 또는 '평면 장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은 ‘포장된 회화’로 일컫는 작업들을 굳이 장식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 포장된 회화 ‘lol’ 연작은 마치 회화가 가진 고무줄의 가능성과 한계를 실험하고자 팽팽하게 줄을 늘여가며 그가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외연을 넓히는 듯 보였는데, 만약 힘껏 늘린 회화의 줄이 닿은 곳이 다름 아닌 장식의 영역이라면? 어쩌면 장식 비평으로 명명한 이 글을 통해 바로 앞서 던진 물음이 영 터무니없는 도발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각주
[1]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2020)에서의 ‘오너먼트(ornament)’ 어원에 대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Middle English (also in the sense ‘accessory’): from Old French ornement, from Latin ornamentum ‘equipment, ornament’, from ornare ‘adorn’. The verb dates from the early 18th cent.
[2] 김정아, 「오나멘트와 데코레이션의 차이에 대한 역사적 연구 – 고전 고대와 19세기 건축 장식의 존재 양태와 의미 작용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계』, 22권 2호 (2006), pp. 137-140, 142.
[3]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2020)에서의 ‘데코레이션(decoration)’ 어원에 대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late Middle English: from late Latin decoratio(n-), from the verb decorare, from decus, decor- ‘beauty, honour, or embellishment’.
[4] 앞의 글, pp. 137-140,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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