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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의 장식법





이 글은 미술가 버니 로저스(Bunny Rogers, b.1990)가 2010년에서 2019년 사이 선보인 일련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장식성에 집중합니다. 그녀의 작업은 주로 인터넷 세대의 감각과 미감, 실제 사건과 허구를 엮어낸 기억에 대한 주제, 10대 소녀 문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해석으로 읽혀 왔습니다. 물론 앞선 주제들은 버니 로저스의 작업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들이지만, 저는 그녀의 작업을 보며 줄곧 장식을 떠올렸습니다. Bunny의 웹사이트에 아카이빙된 내용을 참고하면, 그녀는 2009년 작업을 시작해 2010년부터 활발히 작업을 전개해 왔더군요. 제가 버니 로저스의 작업에서 발견한 장식성은 그녀의 초기 작업인 2010년부터 바로 최근인 2019년 작업까지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rogers의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특성인 장식을 주제로 그녀의 작업을 읽어낸 글은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이러한 아쉬움은 이 글을 통해 버니 로저스의 작업 곳곳에서 제가 발견해 온 장식들을 다시금 재탐색하도록 이끌었어요.



리본들 Ribbons


2010년 Bunny Rogers의 초기 작업 중 장식적 단서가 드러나는 작업들이 여럿 있지만 <Bunny's Ribbon Pages>(2010), 저는 바로 이 작업을 장식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선명히 부각된 시작점으로 보았어요. 이 작업에서 Bunny는 리본을 아카이빙하는 웹사이트 하나를 생성합니다. http://meryn.ru/ribbons/ 이 웹사이트가 곧 그녀의 작업입니다. 홈페이지에는 Bunny가 모은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 리본들과 함께, 해당 페이지에 접속한 웹 방문객에게 각자가 가진 리본 파일을 보내줄 것을 요청합니다. 웹사이트의 마지막 코너에는 정석에 가까운 리본 모형 하나에 여러 색과 패턴 옷을 입힌 리본들을 나열해두고 웹 방문객이 원하는 리본을 자유롭게 가져가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Bunny의 리본 페이지에 방문한 누구든지 디지털 리본 이미지를 가져다 본인이 원하는 페이지 이곳저곳을 꾸밀 수 있어요. 또한 이 리본 모형들은 이후 rogers의 작업 일부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녀의 홈페이지 화면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해요.


그 후 2013년 그녀의 작업 중 리본을 활용한 눈에 띄는 작업 하나가 새로이 등장합니다. ‘Mourning mops’로 이름 붙여진 이 작업은 버니 로저스를 대표하는 오브제이기도 하지요. Bunny는 자루걸레 한 대를 가져와 걸레 하단 표면에는 분홍과 보라의 색을 섞어 물들이고, 막대 상단에 반짝이는 진분홍색 리본 하나를 길게 매달아 흰 벽면에 기대어 두었습니다. <Self portrait (mourning mop)>(2013), 그녀는 염색시킨 걸레에 리본을 달아매고 이 오브제에 자신을 대입시켜 ‘자화상’이라 이름 붙입니다. 벽면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어여쁜 자루걸레는 어쩐지 많은 함의를 지닌 듯 느껴지네요. 여성을 비하하거나 모욕을 가하는 표현으로 ‘걸레’가 갖는 비유, 그 비유를 업고 걸레의 겉면을 아름답게 꾸민 Bunny, 그리고 스스로를 이 치장된 걸레와 동일시하며 동시에 걸레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습니다. 이후 그녀가 조금씩의 변형을 가하며 전개한 걸레 연작들 <Lady Amalthea (mourning mop)>(2013), <Allese (mourning mop)>(2015), <Mandy Mop>(2016)은 모두 작품 제목에 여성 캐릭터 혹은 여성 인물의 이름이 붙여졌어요. Bunny Rogers가 그녀의 작업을 통해 부정적으로 부과된 여성 이미지를 표면 위로 부상시키며 발화하는 방식은 오히려 여성성과 장식성을 적극 사용하는 데 있어 보여요. 그녀의 장식 사용은 여성성을 적극 부각시키며 기존 이미지에 부여되어 온 부정적 지위와 낮은 위상에 우아하게 불을 지피고 있네요.



새로운 만다라 New Mandala नव मण्डल


힌두교에서 탄생해 불교에서도 사용되는 ‘만다라(Mandala, मण्डल)’는 종교적 수행 시에 수행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본래 종교적 깨달음과 수행의 의미로 만들어지는 만다라 문양은 정해진 틀 안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무늬를 담아내기에, 그 배열과 형상에 있어서 장식의 특성과 겹쳐집니다. 실제로 만다라는 절 같은 종교적 공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물의 외관이나 벽을 꾸미는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장식 패턴의 예시가 되기도 합니다.


Bunny Rogers 또한 만다라 작업을 전개한 바 있어요. <Mandala's voor Brigid>(2011)는 Bunny가 웹페이지를 만들어 선보였던 이전 리본 작업과 유사한 방식을 취합니다. 이 작업 또한 하나의 웹페이지(http://meryn.ru/bunny/mandala/kleurplaat_mandala.html)를 생성한 뒤, 해당 페이지에 145개의 서로 다른 만다라 문양을 아카이빙해 두었습니다. 페이지 상단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만다라 문양이 배치되었고 점차 스크롤을 내리면 현대적으로 변형이 가해진 만다라 양식을 발견할 수 있어요. 돌고래, 양, 고양이, 유니콘, 공룡 등의 귀여운 모양들이 제각각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만다라로 거듭납니다. Bunny의 변형 만다라는 바로 다음 해 작업인 <MBTI mandala coloring pages>(2012)에서 더욱 자유로운 해석과 변형이 가해졌더군요. rogers는 성격 유형 테스트 MBTI에서 세 가지 유형(INFP, INTJ, INFJ)의 성격을 반영한 만다라 드로잉을 전개했어요. INFP 유형의 만다라 드로잉에는 그녀가 자주 사용해 온 리본도 세부 장식으로 발견됩니다. Bunny가 작업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장식 요소의 사용은 늘상 그녀와 손을 맞붙잡고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마땅해 보입니다.



꽃 장식 floral decoration


<Sister Unn’s>(2011-2012)는 Bunny Rogers의 초기 작업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예요. 그때 당시 Bunny와 Filip Olszewski는 약 6개월 간 폐점한 꽃가게를 점유했었죠. 두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꾸미는 동시에 웹사이트(http://www.sister-unns.com)를 함께 오픈했습니다. 뉴욕 퀸즈의 포레스트 힐 근처에 위치한 이 꽃가게 입구에는 검정 바탕의 간판이, 그 중앙에는 흰 글씨로 Sister Unn’s가 적혀 있었고, 유리창 너머 공간 안쪽으로는 양 벽면을 사이에 두고 꽃 장식이 주르륵 이어집니다. 공간은 불이 꺼진 상태로 전시되었고, 중앙 제일 안쪽에 비치된 쇼케이스에만 새하얀 불빛이 들어 왔어요. 쇼케이스 안에는 네모 모양의 두터운 얼음 속 분홍 장미꽃 한 송이가 꽁꽁 얼려진 채 전시되어 있었죠. 그리고 이 꽃집 이름과 동명으로 생성된 웹사이트에는 Rose Gallery라는 코너가 만들어져 색색깔의 장미꽃 모양을 가진 디지털 장미들이 가상의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꽃은 누군가의 슬픈 사연에 함께 슬퍼하는 방식으로, 또 누군가의 축복받아야 할 일에 함께 축하하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왔죠. 폐점한 꽃가게 Sister Unn’s 또한 누군가의 여러 기념일에 위로와 축하를 더하는 데 일조했었습니다. 그리고 웹사이트 Sister Unn’s는 앞선 뜻깊은 행보를 온라인 상에서 이어가기로 합니다. 원하는 디지털 장미꽃 이미지를 다운받으세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달해보세요. 오프라인 꽃가게 Sister Unn’s는 진작에 문을 닫았지만 온라인 꽃가게 Sister Unn’s는 영구히 지속됩니다.



애도, 기념, 장식 mourning, commemoration, decoration


1999년 텍사스 콜럼바인 고교의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Bunny Rogers의 가장 잘 알려진 작업인 콜럼바인 3부작 《Columbine Library》(Société, 2014), 《Columbine Cafeteria》(Greenspon Gallery, 2016), 《Brig Und Ladder》(Whitney Museum, 2017)의 주된 흐름은 ‘애도’로 연결됩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9살이던 rogers의 기억 속 콜럼바인 고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어집니다. 콜럼바인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Columbine Cafeteria》는 영상과 회화,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선보인 전시였어요. Bunny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의 현장이었던 카페테리아 풍경 일부를 재현/재해석한 설치를 선보였습니다. 또한 Bunny는 콜럼바인 1부작과 이어지는 맥락에서, 유년기 즐겨 보던 TV 애니메이션 <클론 하이(Clone High)>에서 잔 다르크를 복제한 캐릭터인 조안(Joan of Arc)을 스스로를 대입시킨 인물로 지속적으로 등장시킵니다. 《Columbine Cafeteria》에서는 조안과 함께 <클론 하이>의 다른 캐릭터 맨디 무어(Mandy Moore)가 새로운 인물로 출현합니다. 냉소적 성격의 조안과 홈리스 천사 맨디, 두 여성 캐릭터는 “Snowflake Day” 주제의 에피소드에서 함께 등장하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됩니다. rogers는 조안과 맨디의 형체를 빌어 콜럼바인 사건에 대한 애도를 작업으로 구현해냈죠. 가령 전시의 <Mandy’s Piano Solo in Columbine Cafeteria> 영상에서 맨디는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당시의 사건을 감정적으로 공유하며 애도합니다. 또한 <Mandy Memorial and Mandy Mop>, <Lisa Bright and Dark (for Andrea)> 등 Bunny는 이전 작업인 자루걸레 오브제를 다시 가져오거나, 조안과 맨디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제작해 전시장에 설치하며 당시를 위로하고 기념하는 의미를 추가적으로 더하기도 했어요. 전시에는 앞선 변형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더불어 유사 의류 매장 쇼케이스로 보이는 설치물, 할로윈 분위기의 호박 양초 등 장식 요소는 전시 공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이러한 애도와 장식의 결합은 Bunny의 2018년 작업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네요. 그녀의 <Memorial Wall(Diabetes)>(2018)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철조망 벽 사이사이로 보라색 단풍 무늬 리본을 단 설치를 구현하며 익명의 누군가를 향해 애도를 표합니다. 생각해보면, rogers가 줄곧 자신의 머리 장식으로, 웹사이트의 페이지마다, 작품 여기저기에 달아 놓은 각종 리본들은 어쩌면 그녀가 매순간 누군가를 기리고, 애도해 왔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길을 걷다 종종 마주하는 누군가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처럼, Bunny Rogers의 장식은 개인적인, 또 어쩌면 사회적인 표식으로써 그녀만의 애도 방법일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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